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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죽음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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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359회 작성일 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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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명상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위령 성월의 시작과 함께 ‘모든 성인 대축일’과 ‘위령의 날’을 보냈습니다. 마치 이 조락의 시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죽음을 대면하라는 어머니이신 교회의 자상한 초대로 느껴집니다. 위대한 종교와 사상들은 ‘죽음의 명상’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배움이자 연습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배의 시간을 기다리며 죽음의 의미와 영혼불멸의 희망에 대하여 제자들과 논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전해줍니다. 고대 교회의 교부들 역시 이 대화편에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죽음의 명상’은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의연함과 깨끗한 양심이 주는 희망에 그치지 않습니다. 철학에서 배우되, 이를 넘어서는 그리스도교적 ‘죽음의 명상’을 배우고 싶다면, 무엇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성염 옮김, 경세원, 2016)에 나오는 성녀 모니카의 죽음 장면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고백록』은 397/8년에 쓰인 오래된 책이지만, 오늘날 읽어도 곁에 있는 사람의 생생한 고백처럼 느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현대인에게도 중요한 과제이자 갈망인 내면의 자아 발견과 실존적 삶의 의미 추구를 치열하면서도 탁월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전제나 타협 없이 자신의 본 모습을 탐구하면서 그 심저에서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대화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불안과 고뇌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불안의 뿌리에는 죽음이라는 숙명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각고의 시간과 방황의 여정을 거쳐 죽음에서조차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귀의하기 전의 젊은 시절, 아끼던 벗을 잃었을 때 느낀 슬픔과 충격을 회고하는 『고백록』 4권과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느님께 보내드리는 9권의 내용을 비교하면, 신앙인이 하느님 안에서 ‘죽음의 명상’이란 여정을 걸었을 때 어떤 은총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성인은 어머니의 죽음을 참으로 슬퍼하며 통곡하지만, 이를 비극이나 상실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상 여정에서 가장 큰 아픔인,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역시 하느님 안에서 치유를 받는 은총의 순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성인과 성녀를 갈라놓기 전, 함께 오스티아 바닷가 정원에서 하느님의 신비와 피조물의 구원을 신비적 관상 속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니카 성녀에게 바다 건너 고향으로 건너가 묻히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지상에 있는 한 언제나 나그네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명상’은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평화와 신앙으로 열매 맺게 합니다. 이렇게 정화된 슬픔의 은총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 중 하나가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 Gabriel Faure(1845-1924)의 위령 미사곡 <레퀴엠>입니다. 그중에서도 “자비로운 예수님” Pie Jesu와 “천국으로” In Paradisum를 들으면, 죽음의 순간 오히려 가장 찬란히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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