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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시인의 눈, 화가의 손 (2) :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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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266회 작성일 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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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 화가의 손 (2) : 폴 세잔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전원적 아름다움과 고대 로마의 흔적을 간직한 액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중년이 되어 씁쓸한 파리 생활을 청산한 그는 명성과 성공에 대한 기대를 접고, 고향에서 오로지 예술적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예술인과 평론가, 화상과 미술 애호가들은, 변방에서 외롭고 묵묵하게 작업한 그가 단지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이전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한 방식으로 ‘보는 법’을 발견하여 새 시대,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895년 파리의 미술상 볼라르가 마련한 세잔의 첫 번째 개인전은 당시 예술계의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오십 대 중반이 넘는 세잔이 처음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세잔은 더이상 인상주의의 한 아류가 아니라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개념인 ‘모더니즘’의 시작점이 되고, 표현주의, 입체파, 야수파는 물론, 마티스와 피카소와 칸딘스키에 이르는 현대미술 대가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술가나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세잔의 그림은 흔치 않은 체험을 선사합니다. 미묘하고 다채로운 색채와 명상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심도와 구조와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단단한 마음의 중심을 스스로 발견하게 합니다. 

세잔의 그림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리감과 타자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 존재에 다가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길이 때로는 멀고 험하지만, 내 앞의 대상이 그 존재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각고의 시간은 커다란 보답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인상이나 스쳐 지나가는 감상적 느낌이 아니라 존재에 뿌리를 둔 구체적 만남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존재와 인격은 오직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만 변화의 힘을 얻습니다. 세잔의 그림은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철학 역시 넓은 의미에서 ‘보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메를로 퐁티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의 세잔에 대한 해석을 잘 정리하고 있는 책이 있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전영백, 『세잔의 사과』, 한길사, 2021).


이번 가을에 세잔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여러 예술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쓴 세잔에 대한 몇 권의 책을 몰아서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가 쓴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배수아 옮김, 아트북스, 2020), 현대시의 시작을 알린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세잔의 회고전을 보고 아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담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세잔에 관하여』(옥희종 옮김, 가갸날, 2021) 그리고 세잔을 존경하며 말년에 그와 교류했던 에릴 베르나르의 『세잔느의 회상–고난의 지성에게 바치는 찬미가』(박종탁 옮김, 열화당, 1995)입니다. 


세잔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음악에서 특별한 감식안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파리를 떠나 고향에서 정물들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삶을 산 탓입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바그너 역시 현대음악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연 사람이므로 세잔에게 어울리는 음악가라 하겠습니다. 세잔의 그림 중에는 바그너 오페라의 이름을 딴 <탄호이저 서곡>이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이자 바그너의 천재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작품 <탄호이저>의 숭고한 서곡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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