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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시인의 눈, 화가의 손 (1)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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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212회 작성일 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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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 화가의 손 (1) : 헤르만 헤세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우리에게는 ‘시인의 눈’과 ‘화가의 손’이 필요합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별것 없이 스쳐가는 권태로운 일상에서도 생기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지요. 이렇게 행복을 찾아내는 감수성을 은유적으로 ‘시인의 눈’이자  ‘화가의 손’이라 표현하고자 합니다. 시인은 심층적 의미, 곧 아직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화가는 내면과 자연이 만나고 진실과 상상력이 하나가 된 순간을 형상화할 수 있는 손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술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위대한 시인과 화가들의 지혜를 배우며 ‘시인의 눈’과 ‘화가의 손’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헤세와 세잔과 릴케와 터너를 연이어 만나고자 합니다. 찬찬히 그들의 작품을 음미하고 인생의 여정들을 살펴보며 그들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간 과정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지혜와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반전사상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 중립국 스위스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회복과 치유와 참된 자기 자신의 발견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의 사상과 영성이 그리스도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내면의 고유한 자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 곧 인생을 소명으로 이해하고 받아 안은 자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줍니다. 


헤세가 1919년, 작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이름으로 내놓은 『데미안』(안인희 옮김, 문학동네, 2013)은 당대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시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칼 융의 심층 심리학을 깊이 받아들이고 동방 신비주의에 공감하면서 심오하고 상징적인 작법으로 현대인의 내적 공허를 일깨워주고 독자들이 고유한 자아를 탐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상처 입고 버려진 내면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자, 비록 우리가 부족함과 불완전한 인간들이지만 서로에게 충만한 삶을 위한 영감을 줄 수 있다는 호소라 하겠습니다. 소설 『데미안』의 서문은 헤세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큰 위로와 용기를 전해줍니다. 특히 아래의 대목은 홀로이되 함께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인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둔하게, 어떤 이는 더 환하게, 누구나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이러한 모색은 노년에 완성한 최고의 걸작 『유리알 유희』에서 새로운 결실과 전망에 다다르게 됩니다. 주인공인 현자 크네히트의 유고시로 소개되는 <계단 > Stufen은 오늘날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일컬어집니다. 이 시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은 우리 인생에 생기와 용기 그리고 행복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함께 한다.” 


헤세는 고전 음악을 깊이 사랑하였고, 넓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헤세를 상징하는 음악은 독일의 위대한 바로크 음악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작품입니다. 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흠모하고 깊이 연구한 작곡가입니다. 헤세는 『데미안』에서 북스테후데의 위대한 오르간곡 “파사칼리아” Passacaglia를 신비스럽게 언급합니다. 이 곡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바로크 연주자 톤 쿠프만의 연주로 들으며 인생의 경이와 신비를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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