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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로베르 브레송의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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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258회 작성일 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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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브레송의 단상들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최근 프랑스 영화감독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1901-1999)의 단상을 모은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이윤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21)가 다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예전에 나온 번역본이 있지만, 상세한 해설이 붙어있는 새 번역을 한 문장씩 음미하다 보니, 마음가짐을 가다듬게 되고 정신이 명료해집니다. 


이 얇은 책은 위대한 영화감독이 남긴 유일한 책입니다. 일찍부터 영화 외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던 그였기에, 인터뷰도 기고한 글도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는 상업적 유명세에 호응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오랫동안 고뇌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영화화하려 했던 평생의 꿈을 포기하고, 70년대 이후부터는 사실상 은자처럼 살았습니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사형수 탈주하다> <소매치기> <뮤세뜨> <당나귀 발타사르> 등 13편의 영화만으로도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습니다. 영화의 종교성과 초월성을 이야기할 때, 그의 작품은 잉마르 베리만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과 함께 ‘경전’의 반열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브레송에 대해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의 평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 소설이고, 모차르트가 독일 음악이라면, 브레송은 프랑스 영화다.” 


브레송의 ‘노트’는 단상집이라 할 수 있지만, 느긋하게 이러저러한 생각을 그냥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영화 작가로서의 투철한 자세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수많은 정련과 성찰의 시간을 거쳐 놀라운 밀도로 함축된 언어의 결정체입니다. ‘작업노트’이지만 영화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브레송의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삶과 일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서늘해지는 결연함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마치 파스칼의 <팡세>나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읽을 때처럼 긴장감과 경이로움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이 가을, 브레송의 몇몇 단상을 깊이 새기고 간직하고자 합니다.


-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이 아니라 서로의 시선을 본다.”

-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왜곡하거나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 사이에서, 그들이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들을 맺게 하는 것이다.”

- “가장 일상적인 단어도 제자리에 놓이면 갑자기 광채를 내기 시작한다. 영상들은 바로 이 광채로 빛나야 한다.” 

- “세잔의 말: 붓질을 할 때마다 나는 매번 내 인생을 건다.”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에서 감정을 자아내기 위한 음악의 사용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배경 화면이나 감정을 지지하거나 강화하는 음악은 없다. 어떤 음악도 없다.”라고 적어둘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걸작들을 보면, 고전 음악이 감동적으로 사용된 대목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특히 가장 예리하고 처연한 작품 중 하나인 <당나귀 발타사르>에는 인상적인 선율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 2악장 ‘안단티노’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여기에 깊은 숙고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졌지만, 당시는 이제 막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진가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여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멜로디에서 느낀 감정은 더 깊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명연주를 통해 슈베르트가 가곡과 실내악뿐 아니라 피아노 음악의 위대한 작곡자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제는 빌헬름 켐프와 알프레드 브렌델 등 많은 명연주자를 통해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의 진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브렌델의 제자이자 그 자신이 오늘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인 폴 루이스의 연주로 이 곡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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