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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인생의 은유들 (3) - 난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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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720회 작성일 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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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은유들 (3) - 난파선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현대 해석학의 거장 폴 리쾨르(1913-2005)는 은유에 대해 심오하면서도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성찰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은유』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은유는 우리의 삶에 생기와 창조력을 불어넣고, 인생이 박제 상태로 휩쓸려가는 게 아니라 생동감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있도록 이끕니다. 그런데 은유가 이러한 힘을 지니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은유야말로 ‘사유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유’는 과학적 사실이나 주관적 관념으로 세상과 타인을 파악하고 규정하여 자기 안에 잡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존중하고 자신을 개방하며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은유가 살아있지 않을 때는,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틀에 박히게 되고 고정관념에 빠지며 진실에 눈이 멀 수 있습니다. 

리쾨르에 의하면, 은유는 진술이나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더 많은 것을 말하기 위해 의미의 고정이나 장악을 포기하고 개방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은유”는 정확한 지칭이나 고정적이고 일의적인 의미를 알아내고자 하는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만남을 통해 펼쳐지는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며, 그에 응답하고 삶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런데 은유가 살아있다는 것은 기발한 표현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은유의 언어를 우리가 얼마나 공들여 살피고 마음으로 공감하며 섬세하게 살펴보는지, 그래서 은유가 우리의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은유”를 어떻게 얻고 간직하는가 하는 물음은 좋은 인생을 위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스 블루멘베르크가 『난파선과 구경꾼』에서 인생을 ‘난파선’에 비유하는 ‘관습적인 은유’를 헬레니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에서부터 근대 말엽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까지 정신사적으로 추적하고, 오늘날 이 은유가 ‘살아있는’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한지를 살펴본 작업은 주목할 만합니다. 블루멘베르크는 ‘난파’라는 인생의 은유가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난파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안전한 항구에서 그 사고를 남의 일로 여기며 바라보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는 것이지요. 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생을 난파된 배 안에서 수리하거나 홀로 탈출하고자 애쓰는 것으로 생각하여 ‘생존술’을 그 중심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난파선’이란 은유가 불러일으키는 사유가 이 정도 의미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난파된 배와 같은 인생의 위기에서도 숭고한 인간애와 협력이, 지혜와 인내와 용기의 덕이, 무엇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하는 분투야말로 인생의 참된 목적에 다가선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이유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가수 셀린 디옹은 이 영화의 주제가 <나의 마음은 계속됩니다> My Heart will go on를 20년 넘게 부르며, 이 곡이 자신의 인생 노래라고 말합니다. 아마 많은 이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인생에서 난파된 순간이 오더라도, 거기서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의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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