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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형제들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마태 28,20)하려는 프란치스코의 「모든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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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144회 작성일 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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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화 사명 이행
- 평화 증진과 세계 공동체 건설]

제2장 길 위의 낯선 이 (사회적 약자) ④
인간관계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사회 현안을 보기,
복음과 전승과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하기
빛과 누룩으로 행동하기

이번 주는 「모든 형제들」 69-71항에 나오는 ‘끊임없이 다 른 형식으로 듣는 이야기’의 요지를 소개합니다. 우선, 회칙 은 오늘날 “사회‧정치적 불활동”의 정세가 생태 위기와 평 화 위기처럼 “세계의 많은 부분을 황량한 샛길”로 만들고, “국내‧국제적 논쟁들과 기회의 박탈(불평등)”이란 정세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 증가처럼 “수많은 사람을 길 위에 쓰러 뜨리고 있다”는 점을 성찰합니다(71항). 우리는 개인으로든 사회 전체로든 기후 변화 같은 생태 위기에 직면해서도 탄 소가스를 줄이려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으며, ‘산발 적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평화 위기의 정세에도 무감각합 니다. 이러한 때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현안 해결 을 위한 선의(善意)의 대화 노력에 영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둘째,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 과제”와 “진실의 순 간” 무엇보다도 “결정의 절박함”을 알려줍니다.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해주기 위해, 또한 그가 일어서도 록 허리를 굽혀 도움을 줄 것인가?” 이 물음은 이기적 개인 주의나 폐쇄적 국가주의(nationalism)의 삶에 익숙한 현 대인들에게 응답을 요구하는 도전 과제입니다. 그리고 사회 적 약자의 고통을 보고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 곧 돌보는 사람들과 그냥 지나가 버리는 사람들”만 있다는 점에서 지 금은 선택을 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입니다. 게다가 “지금 여기서 강도도 아니고 지나가는 이도 아니라면, 누구나 상 처를 입은 사람이거나 어깨에 상처 입은 사람을 들쳐 맨 사 람”일 것이므로 이 선택의 결정은 절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70항). 혹시 우리는 이런 도전 과제와 진실과 절박함을 의 도적으로 회피하지는 않는지요?

마지막으로, “길가에 상처 입고 쓰러져 있는 그들을 포용하 거나 배제하는 결정은 어느 경제‧정치‧사회‧종교적 프로 그램이든 그 자체를 심판하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는 날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한 방관자가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69항). 경제(經濟)에 서 ‘제’는 ‘건너다, 돕다, 도움이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정치 의 역할 중 하나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을 말합니다. 종교(宗敎)의 ‘종’은 ‘마루, 일의 근원, 근 본, 으뜸, 제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경제를 사람보다 돈이나 시장에 도움이 되는 것쯤으로, 정치를 민 생보다 권력의 획득과 유지쯤으로, 사회를 공동생활의 토 대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전장(戰場)쯤으로, 종교를 하 느님과 사람을 찾기보다 형식적 제사의 이행쯤으로 이해하 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그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도착 (倒錯)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 유를 통해 “사랑에 있어 인내하라고,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존엄을 회복시켜 주라고, 또 그 이름에 합당한 사회를 건설 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 위 글에 나오는 인용은 필자의 번역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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