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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말씀 /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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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259회 작성일 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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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유다교의 최고 성지는 단연 통곡의 벽입니다. 그래서 늘 붐 비지만, 성인식을 치르는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더 떠들썩해 집니다. 여자아이는 만 12세부터, 남자아이는 13세부터 율 법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성인이 됩니다. 이날, 가족과 친지 들은 사탕을 던지고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성인식을 통곡의 벽에서 하는 건, 과거 그 위 모리야산에 성 전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의 성인식

유다인의 성인식

모리야산 위의 성전을 마지막으로 보수한 이는 2,000년 전 헤로데 임금입니다. 그는 모리야산을 평평하게 깎아 500미 터 길이의 광장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성전을 개축하였습니 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강도들의 소굴로 변질된 성전을 꾸짖 으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고 예고하신 대로, 기원 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열혈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하 며 징벌 차원으로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유다인 들에게, 명성황후 시해나 숭례문 화재 사건에서 우리가 느 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고통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리야산에는 성전을 받치던 바깥벽들만 남게 되었 는데, 그 가운데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유다인들 이 유독 서쪽 벽을 성지로 삼아 기도하는 건, 그 벽이 성전의 지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인 데다, 솔로몬 임금이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주 십시오.”(1열왕 8,30)라고 하느님께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통곡의 벽은 오늘날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상 징하는 심장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통 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다인

통 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다인

그렇다면,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이는 유다인들이 로마에 거슬러 일으킨 제2차 반란 사건 (132-1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후 66년 발발한 열혈당원들의 반란 뒤, 132년에는 바르 코흐바 혁명이 일어 납니다. 유다인들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분노한 로 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는 유다인들을 예루 살렘에서 내쫓았습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성전파괴일인 아 브 월 9일에만 출입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예루살 렘으로 올라온 유다인들이 서쪽 벽을 붙들고 밤새 통곡하 다가, 이튿날 울며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한 전승에 따 르면, 성전이 무너지던 날 그 벽이 이슬에 젖어 마치 우는 것 처럼 보였다고도 합니다. 다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통곡의 벽은 유다인들에게 ‘화중지병’(畵中之餠) 곧 그림의 떡과 같 았는데요, 그때는 동-예루살렘이 요르단의 영토였기 때문 입니다.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 뒤에야 이스라엘은 예루살 렘 통합(?)에 성공합니다.

통곡의 벽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는 유다인들을 보 고는, 졸면 안 돼 몸을 흔든다는 둥, 몸을 흔들어 기도를 바 치면 두 배가 되기 때문이라는 둥 재미있게 추측하곤 하지 만, 사실 이는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려는 몸짓입니다. 기도한 뒤에는 주님께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로 나 옵니다. 이런 유다인들을 볼 때면, 성전 건물은 외형에 불과 할 뿐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데는 거창한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김명숙 소피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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