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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말씀 / 판관 입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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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346회 작성일 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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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입타의 비극

아브라함이 주님의 명령으로 아들 이사악을 바치려 한 일 (창세 22,1-19)은 딸을 제물로 바친 판관 11장의 입타를 떠 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사악의 번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을 시험하시려던 의도였지만(1절), 입타의 사건은 인신제(人 身祭)가 이스라엘에서 합법이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의문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행간에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길앗' 산지

'길앗' 산지

입타는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점에서 아들의 번제를 명 받 은 아브라함과 닮았지만 차이점을 여럿 보여줍니다. 아브라 함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창세 12,1) 가나안으로 왔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큰 부자가 됩니다(13,2 등). 이사 41,8에서는 ‘주님의 벗’이라 불릴 만큼 하느님과 특 별한 관계에 있었으니, 주님께서 아들을 바치라 하셨을 때 그 분을 신뢰하는 건 그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 다. 그에 비해, 입타는 천출(賤出)이라 ‘부친의 집에서 쫓겨났 고’(판관 11,2) 훗날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그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이해타산 때문이었습니다. 암몬 과의 전쟁을 앞두고 그의 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5-8절). 그 러니 어릴 때부터 홀로 생존 투쟁을 한 입타가 아브라함처럼 무조건적 신뢰를 갖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판관 11,29(“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을 보면, 하느님 께서는 입타가 ‘위험한 맹세’(30-31절)를 하기 전부터 그와 함께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확신하지 못한 입타는 끝내 누군가의 목숨을 건 다음, 마치 도박하듯 출전합니다. 만일 승전한다면 자신을 맞으러 맨 처음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자 신의 무남독녀가 나오게 되자 절망해버립니다. 하지만 주님 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 탓을 오 히려 딸에게 돌립니다: “아, 내 딸아! (···)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35절) 생존하느라 힘들었고 그 때문에 남 탓에 도 익숙해진 입타는, 충직한 성품 덕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실하게 살아간 아브라함과 크게 대조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중요한 것만 언급하 곤 하는데, 입타의 비극은 매우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유행하던 인신공양을 비판하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곧 입타의 사연을 통해 인신제가 백성이 바란 행 복이나 성공이 아니라 도리어 비극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 닫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김명숙 소피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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