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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대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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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국 댓글 0건 조회 2,139회 작성일 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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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삶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 | 대신학교


얼마 전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표재명 옮김, 문예출판사, 1995)를 다시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다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1878-1965)는 구약의 정신과 유다교의 다양한 전통 그리고 관념론에서 실존주의까지 독일 철학의 흐름과 새로운 방향에 두루 통달했던 대학자입니다. 경건주의와 신비주의를 포함한 근대 이후의 유다이즘에 심취했던 시기와 현대 철학인 현상학 전통에 눈을 뜬 시기를 거쳐 철학적 성숙과 완성이 이루어진 것은 이른바 ‘대화 철학’의 관점을 확립하면서입니다. 

부버와 같은 유다인으로서 구약 성경과 유다이즘의 정신을 현대 철학과 대결시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고 그와 함께 구약 성경의 번역작업을 한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1886-1929)와, 부버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가톨릭 정신에 바탕을 두고 영적 신비에 대한 개방성을 철학적 탐구의 중심에 둔 페르디난트 에브너(1882-1931)의 영향은 부버에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대화적 사고와 대화 철학의 선구자이자 오늘날까지도 그 대표자로서 높게 평가받습니다.


부버는 요절한 로젠츠바이크나 에브너와 달리, 긴 세월 저술과 강의를 통해 꾸준히 대화적 사유를 발전시켰습니다. 그가 1920년대 내놓은 『나와 너』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이자 ‘대화 철학’의 시작이 된 저서입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실존철학의 유행으로 전 세계로부터 많은 독자를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 책은, 거의 백 년 전 유럽에서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절실함을 더하는 ‘오늘을 위한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버가 강단철학자가 아니라 평생 교육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사상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점도, 이 책이 간간이 철학적 언어의 난해함을 보임에도 모든 이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라 하겠습니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는 구절은 이 책의 주제를 잘 요약합니다. 만남은 깊이 있고 정신과 감성과 영혼이 깃든 대화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진정한 대화는 나에게 부수적인 존재로 ‘너’를 보는 게 아니라 ‘나와 너’라는 ‘근원어’ 안에서 자라납니다. ‘나와 너’의 관계성 안에서 타인을 대하고 경청하며 말을 건넬 때 인간적 만남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참된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적 사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라는 ‘절대적 너’의 차원이 우리 안에서 ‘나와 너’라는 근원어가 살아있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각자도생의 삭막함이 시대정신인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삶을 나누고 인생을 걸어가는 행복을 희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화의 본질은, 역설적으로 ‘말’을 나눌 때가 아니라 말없이 교감을 나눌 때 더 깊이 체감되곤 합니다. 그리고 음악적 교감이야말로 ‘대화’로 이끄는 특별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륜 있는 음악가들의 느긋하면서도 우정 어린 연주를 듣다 보면, 청중 역시 대화의 깊은 차원으로 들어서게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 전설적 음악가 에릭 클랩튼은 코로나로 순회공연이 무산된 이후 스티브 갯, 이던 이스트 같은 음악가들을 자신의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소박하지만 깊은 위로를 주는 음악을 실황으로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과 음반이 공개되었습니다. 그중 너무나 유명한 “Tears in Heaven”을 대가들의 연주와 노래로 들으면, 힘든 시기에 위안을 얻고 또한 진정한 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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